멀리 떨어진 곳, 그 어딘가에서 펼쳐지는, 마치 영화 같은 가상의 이야기를 그려낸 것이 이 파 크라이라는 시리즈입니다. 이제는 유비 소프트의 대표 IP 중 하나로 자리 잡았지만, 재밌게도 파 크라이 시리즈의 첫 작품은 유비 소프트가 아닌 전혀 다른 개발사에서 발매됐었습니다.
파 크라이 시리즈의 시작이자 첫 작품인 1편은 크라이시스 시리즈와 크라이 엔진으로 유명한 크라이텍에서 개발된 게임이었죠. 이후, 2편부터는 유비 소프트로 판권이 넘어가 유비 소프트의 게임이 된 것입니다. 크라이텍에서 내놓은 파 크라이 1편은 당시로선 꽤나 충격적인 작품이었습니다. 그때까지의 FPS 게임은 전부라 해도 좋을 정도로 거의 대부분이 일자 진행형 방식을 띄고 있었던데 반해, 파 크라이 1편은 어설프게나마 자유롭게 게임 속 세상을 돌아다니며 미션을 수행할 수 있는 나름의 자유도가 있었습니다.
유비 소프트로 판권이 넘어간 2편은 현재 기준으로는 미흡한 부분이 많아 보이지만, 역시나 발매 당시엔 수준급의 수작으로 인정 받는 작품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배우는 데칼코마니 같은 로고가 상당히 인상적.
파 크라이 시리즈의 전통은 특정 지역이 아닌, 모티브로 삼은 가상의 장소를 무대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각 작품마다 가상의 국가나 섬, 지역 등을 배경으로 해왔습니다. 때로는 네팔과 티벳을 모티브로 한 히말라야 산맥의 국가를 무대로 하고, 때로는 내전 중인 아프리카의 어딘가로 한 지역을 배경으로 잡아 스토리를 전개해왔습니다.
파 크라이 시리즈는 그런 식으로 보편적인 게이머들이 살고 있는 국가가 아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국가나 미지의 장소로 여겨지는 곳을 무대로 삼아 왔습니다. 그 전통은 시리즈의 최신작인 파 크라이 5편의 무대가 미국 본토 내 가상의 주로 설정 되면서 깨졌지만 말입니다.
드디어 한글로 즐길 수 있어진 파 크라이 3!
기본적인 전투와 시점은 FPS로 진행되나, 넓은 오픈 월드를 자유롭게 거닐며 여러 종류의 퀘스트를 수행하고, 수집 요소와 다양한 총기를 비롯한 무기를 써가며 작중의 메인 빌런인 구역의 지배자를 처단하는 것. 파 크라이 시리즈는 상당히 독특한 장르입니다.
사실, 파 크라이 시리즈는 유비 소프트의 주력 IP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게이머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매력적인 빌런과 다양한 화기를 들고 신나게 적들을 때려 부수는 플레이 자체는 즐거운 편이나, 유비 소프트의 반복적이고 지루한 퀘스트나 어딘가 2% 모자란 플레이의 재미 등 호평에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파 크라이 3편의 주인공과 그 일행들은 미국 상류층 집안의 자녀들.
오프닝은 외딴 섬에서 금수저들의 신나는 파티를 담고 있다.
오프닝 동영상 BGM으로 깔린 M.I.A의 Paper Planes가 절묘하게 어울린다.
그리고 본 작품의 주인공 제이슨.
그들은 섬에서 먹고, 자고, 발길 닿는 대로 신나게 놀며,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휴가를 즐긴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발매된 파 크라이 3 클래식 에디션은 팬들이 시리즈에 갖고 있는 불만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파 크라이 시리즈 중 최고의 명작이자, 유비 소프트의 수많은 게임들 가운데 가장 많은 고티(G.O.T.Y)를 수상한 작품임과 동시에, 전작에 비해 월등하면서도 올바른 변화와 진보를 보여준 작품입니다.
오프닝 BGM은 위 영상의 음악을 들어보면 된다.
꽤나 친숙하게 느껴질 것.
파 크라이 3편의 메인 빌런 '바스'.
먼저, 파 크라이 3편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본 작품의 메인 빌런인바스덕분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매 작품 마다 명확한 테마를 잡고 그것을 바탕으로 스토리와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바스는 3편의 주제였던광기를 제대로 표현한 캐릭터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GTA 5편의 싸이코로 유명한트레버 필립스에 비견될 정도로 정신이 나간 인물입니다. 주인공 일행이 놀러 온 곳이자 본 작품의 무대인 가상의 섬루크를 점령하고 납치, 인신매매, 마약 등 온갖 악행과 범죄를 서슴치 않는 악당이죠. 뿐만 아니라 그는 게임 내내 플레이어를 괴롭힙니다. 싸이코스러운 언행과 행동은 기본이며,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바스는 이 작품의 주제인 광기를 가장 잘 표현한 캐릭터이자, 광기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로서 플레이어의 몰입도를 끌어 올리는 중요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유명인사나 영화속 명대사 등을 인용하는 게 취미인 바스.
빌런은 무척 매력적인 캐릭터인 반면, 주인공인 제이슨은 금수저라는 특징 외에는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청년입니다. 군 기술을 배운 것도 아니고, 암살 기술이나 서바이벌을 익힌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제이슨은 밋밋하며 이렇다 할 경력이 없는 심심한 캐릭터죠.
우습게도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파 크라이 3에 더 몰입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 자신과 크게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아온 민간인. 제이슨은 게임 내에서 처음 사람이 죽는 걸 볼 때 기겁하며, 제 손으로 처음 사람을 죽일 때는 목소리와 손까지 벌벌 떠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게임 초반에 제이슨을 도와주는 조력자 데니스는 말합니다. '다 처음만 힘들 뿐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평범한 청년일 뿐이었던 제이슨은 친구들을 구하고 섬을 탈출하겠다는 일념하에 섬을 점령한 바스와 그의 파트너. 그리고 그들의 부하들인 해적들을 무자비하게 죽여가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런 장르의 게임이 익숙지 않은 게이머라도 걱정할 건 없다.
파 크라이 3는 너무 친절해서 게임 초반부터 짜증날 정도로 많은 튜토리얼을 보여준다.
생존 가이드는 읽어보면 가끔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친구들과 가족을 구하기 위한 제이슨의 모험은 멀고도 험합니다. 섬 곳곳엔 해적들이 득실거리고 있고, 그들은 제이슨을 발견하면 지체 없이 죽이러 달려들죠. 게임 초반부엔 들고다닐 수 있는 무기 갯수도 적고, 그 종류도 다양하지 못한데다 탄약까지 모자라 상당히 힘든 싸움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데니스의 말처럼 그건 처음만 그럴 뿐입니다. 제이슨이 느끼는 살인에 대한 죄책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뎌져 가고, 플레이어는 다양한 방법으로 제이슨을 성장시키며 더욱 효율적이고 무자비한 학살 방법을 찾아갑니다. 플레이어가 전투와 게임에 익숙해져 갈 수록, 제이슨이라는 캐릭터 역시 살인에 익숙해지는 것이죠.
시리즈 최신작에선 없어졌지만 과거 파 크라이 시리즈는 반드시 동물 사냥을 해야만 했다.
지갑, 탄약 가방, 화살통, 약 주머니, 인벤토리까지 최대 한도를 늘리려면 동물 가죽이 필요하기 때문.
마찬가지로 최신작에서는 없어진 송출탑 무력화 시스템.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뷰 포인트 개념과 같은 것이었다.
가방 업그레이드를 위해...
적을 소탕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게임에서 이러한 구조는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파 크라이 3는 그 당연한 부분에 약간 다른 맛을 가미하여 몰입감을 높였습니다. 밋밋하면서도 너무 평범한 설정의 주인공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말입니다.
제이슨은 처음엔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고 벌벌 떨던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친구들과 가족을 구하기 위해 적들을 죽여가며 점차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섬의 부족인 라키야트 부족은 주인공을 전사라 치켜세우고, 힘들게 구출한 친구들은 주인공에게 왜 이렇게 변했냐는 질타를 합니다. 기껏 구해낸 친구들의 말에 플레이어가 짜증을 느낄 때, 제이슨은 플레이어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 짜증을 내죠.
멧돼지고 호랑이고 눈에 보이는 대로 사냥한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광기에 대한 표현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본 작품의 테마 그 자체나 다름 없는 바스라는 빌런은 아주 세련되고 야만적인 캐릭터지만, 광기를 담고 있는 건 바스만이 아닙니다. 게임의 무대가 되는 루크 섬 전체가 광기를 띄고 있고, 작중 대사처럼 루크 섬은 사람을 광기로 몰아 넣는 것으로 비춰집니다.
21세기 현대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산제물 공양과 라키야트 부족민들이 게임 내내 보여주는 모습 등, 파 크라이 3는 전반적으로 모든 부분에 작품의 테마인 광기를 뿌려두었습니다.
전작인 2편과 비교했을 때 3편은 전반적으로 제법 많은 것들이 추가되었습니다. 무기를 해금하기 위해 굳이 월드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이아몬드를 모을 필요도 없고, 어쌔신 크리드의 뷰 포인트와 비슷한 송출탑 시스템이 새로 생겼으며, 스킬 시스템이 새롭게 추가되고, 사냥과 초소 점령 등의 새로운 요소들이 생겼죠.
어쌔신 크리드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요소는 너무 지나치지 않게, 딱 적당히 파 크라이 시리즈에 도입되었고, 특징이긴 했지만 짜증과 불편 요소에 지나지 않았던 게임 내내 말라리아를 치료해야 했던 것이나, 내구성 시스템 때문에 낡은 총은 툭하면 총알이 걸렸던 시스템은 삭제되었습니다.
해적들이 득실거리는 섬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
좋은 무기와 장비로 모두 쓸어버리면 된다!
온갖 다양한 무기들로 적들을 쓸어버리는 것이 파 크라이 시리즈의 참 재미.
무기에 따라 어태치먼트를 달아서 사용할 수도 있다.
전작들까지의 불편한 요소들은 지우고, 플레이어의 흥미를 돋우는 새로운 요소들의 추가와 매력적인 빌런, 몰입도를 올려주는 장치들과 제법 흥미로운 스토리 등.
파 크라이 3는 확실히 시리즈 가운데 가장 잘 만든 게임이었습니다. 이후 발매된 파 크라이 역시 게임 자체는 재밌고, 매력적인 빌런들이 등장하긴 하며, 훨씬 진보된 그래픽과 다양해진 컨텐츠로 무장했지만, 완성도는 3편이 더 높다고 느껴질 정도로 파 크라이 3는 시리즈의 정점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지급되는 카메라나 망원경으로 적들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것 또한 시리즈 전통.
활은 다루기는 어렵지만 가장 조용하고 빠르게 적들을 처치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적들을 하나씩 처치하는 암살 유형의 플레이가 싫다면,
람보처럼 터뜨리고 부수고 쏴 제끼면서 플레이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떤 식으로 눈 앞의 난관을 헤쳐나갈 지는 모두 플레이어의 자유.
온갖 기발한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파 크라이 3의 장점이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플레이어는 활이나 근접 암살, 소음기가 달린 총 등으로 조용히 적들을 처치할 수도 있고, 자동차에 C4를 부착한 뒤 전초기지로 돌진하다가 뛰어 내리며 격발 버튼을 눌러 순식간에 아수라장을 만들 수도 있으며, 전초기지 내 우리에 갇혀 있는 동물들을 풀어줘서 동물들이 해적들을 쓸어버리도록 유도하는 것까지 가능합니다.
파 크라이 3편에서 새롭게 등장한 스킬 시스템은 매력적인 요소로 자리잡았다.
지금 본다면 그리 훌륭한 그래픽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주요 무대가 되는 루크 섬의 표현은 훌륭한 편입니다. 우거진 숲, 울창한 나무, 여러 개의 섬이 붙어 있는 모양새, 하늘과 동굴의 표현, 6년 전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물 그래픽, 사물의 디테일과 게임 내 요소로 종종 볼 수 있는 환각 표현까지 말입니다.
깨알 같은 미니 게임은 가끔 기분 전환용으로 좋다.
환각 표현은 제법 많이 볼 수 있다.
신기하고 당황스럽지만 독특한 느낌이다.
친구들을 구출하기 위한 고된 여정.
시리즈 가운데 가장 뛰어난 명작이라는 말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벌써 6년 전 게임이기에 지금 즐기기엔 낡은 방식의 게임으로 보이기도 하죠. 그러한 부분은 이번에 발매된 버전이 파 크라이 3 리마스터 에디션이 아닌, 파 크라이 3 클래식 에디션이기에 더욱 두드러집니다.
리마스터 작품이라면 최소한 해상도 증가와 프레임의 향상이라도 있기 마련이지만, 클래식 에디션이라는 이름의 단순 이식 수준인 작품이기에 여러모로 아쉽게 느껴집니다.
단지 그게 전부였다면 파 크라이 3 클래식 에디션은 굳이 플레이해야 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6년이나 지난 게임이고, 새로운 요소는 없으니 이미 클리어해본 적 있는 게이머라면 더욱 가치가 없죠.
그러나 국내 게이머에겐 이번 클래식 에디션이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오리지널 파 크라이 3편은 정식 발매가 되었지만 한글이 아니었고, 이번엔 한글판으로 발매되었다는 것입니다. 파 크라이 시리즈 가운데 가장 스토리가 흡입력 있고 빌런이 매력적인 만큼, 외국어를 잘 모른다면 게임의 재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었던 작품이었으나, 클래식 에디션은 한글로 즐길 수 있어 그럴 걱정이 없어졌습니다.
분명 추가 요소나 퀄리티의 업그레이드가 없는 점은 아쉽지만, 파 크라이 3는 시리즈 정점의 작품이자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서 충분히 즐겨볼 만한 작품입니다. 오리지널 파 크라이 3 발매 당시 외국어였던 탓에 구매하지 않았던 게이머나, 파 크라이 시리즈를 좋아하지만 3편을 아직 플레이해보지 않은 게이머라면 꼭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게임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뒤늦게나마 한글로 즐길 수 있다는 점과 저렴한 가격으로 발매되었으므로, 파 크라이 3 클래식 에디션은 반드시 추천하고픈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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