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봐요 동물의 숲 - 천천히 걸어갈 때 비로소 보이는 따스함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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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봐요 동물의 숲 - 천천히 걸어갈 때 비로소 보이는 따스함 / 2020년 4월

게임/리뷰

by 줄진 2020. 4. 11.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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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0년 4월, 예판넷에 작성한 것을 가져온 글입니다. 
원글을 다듬거나 새롭게 추가한 부분은 없으며, 그 시절의 글을 블로그에 기록해두고자 옮겨왔습니다.

원글 링크 : http://yepan.net/yp_game/8064

발매 시기 2020. 03. 20
리뷰 작성일 2020. 04. 10
게임 장르 커뮤니케이션
정식 발매 가격 64,800원
제작사 닌텐도
정식 발매 기종, 발매 예정 기종 NSW
한국어 유무 한글판

 

 

 

 

 해는 에저녁에 떨어지고, 불쾌하게 덜컹거리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면 적막만이 가득합니다. 어젯밤 귀찮아서 버리지 않은 쓰레기봉투가 현관문 옆에서 나를 바라볼 뿐이고, 오늘도 여지없이 내일로 미루죠. 혼자이기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옷가지를 아무 데나 벗어 던진 채, 이내 피곤에 지친 몸을 의자나 침대에 기댑니다.

 2020년. 우리는 많은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회사 업무, 상사나 동료, 친구들, 가족, 이번 달 카드값 등 생각만으로도 막막하고 답답한 것들이 여름철 날파리처럼 주변을 맴돕니다.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나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들은 당장 처리해버릴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쉴 새 없이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현대인은 리프레시가 필요합니다. 그게 터져버리지 않도록,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저마다의 방법을 갖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고, 낚시, 스포츠, 게임, 쇼핑 등 갖가지 해소법을 활용합니다. 하지만 현재 시국은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와 실외 활동을 지양하는 추세인지라 아웃도어 취미 활동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실내에서 타인과의 접촉을 줄이고 즐길 수 있는 취미 활동은 한정적이기에, 평소에 게임을 즐기지 않던 사람들도 게임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일반적인 게임들과는 지향하는 바가 확연히 다른 게임이 있습니다. 평소처럼 밤이 늦어서야 퇴근한 기획자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게임을 할 시간조차 없는 현실을 씁쓸해하며 동시에 함께 플레이하지 않아도 게임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주민들은 계속 살아가며, 아들과 같은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면 어떨까 했던 것이 이 시리즈의 시작이었습니다.

 

 동물의 숲에서 플레이어는 마왕을 쓰러뜨리거나 세계를 구하는 사명 따윈 없습니다. 레벨을 올리거나 캐릭터를 성장시킬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작은 마을이나 섬에서 동물 친구들과 대화하고, 교류하며 살아가면 될 뿐입니다. 그곳엔 플레이어를 괴롭히는 퍼즐이나 적도 없습니다. 마을 주민들과 하루하루 살아가며 우리의 마을을 꾸미고, 다른 플레이어의 섬에 놀러 가거나, 나의 섬으로 초대해 뛰어놀 수 있습니다.

 

 이 게임에는 목표가 없습니다. 게임 시스템이 허락하는 선에서 우리는 마음껏 뛰어놀면 됩니다. 그 무엇도 플레이어를 억압하지 않습니다. 악덕 사채업자, 고리대금 업자라 불리는 게임 내 NPC 너굴은 사실 아주 좋은 친구입니다. 돈을 빌려주고도 이자조차 받지 않는 회사는 그 어디에도 없죠. 집을 지어주고, 집 크기를 늘려주는 모든 행위를 도맡아 해주는 너굴은 항상 말합니다. 나중에 천천히 돈이 있을 때 갚으면 된다고.

 

 그리고 이 게임은 아주 천천히 흘러갑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죠. 게임의 시간은 현실의 시간과 완전히 동일하게 흐르며, 특별한 행동들은 실제 시간으로 하루가 지나야만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밤에 별똥별을 보고 기도하면 하루가 지난 뒤 별 조각이 섬에 떨어져 있거나, 너굴에게 의뢰한 집 증축이 다음 날이 돼야 완성되거나, 새로운 동물 주민이 우리 섬으로 이사를 오는 것 등등 많은 것들이 하루가 지나야 완성되도록 해두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천히 진행되는 게임을 하루에 더 많이, 더 빠르게 진행하고자 하는 유저들은 옛날부터 타임 슬립 방법을 사용해 왔습니다. 게임기 본체의 시간을 뒤로 돌리거나 앞으로 감아서 어제로 돌아가거나, 내일로 시간을 옮기는 행위죠. 이러한 플레이는 동물의 숲에 존재하는 컨텐츠를 더 빨리 즐길 수 있고, 하루를 기다리지 않아도 일주일 치를 몰아서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게임이 지향하는 방향성과 정체성에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섬을 보면서 주민들과 대화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어떤 날은 특별한 일이 없어도 섬에 있는 바위에서 돌과 철광석, 금광석을 캐며, 나무에 열린 과일을 수집합니다. 나무가 부족하면 도끼를 만들어 장작을 줍고, 집 인테리어나 섬을 예쁘게 꾸미기 위해 가구를 만듭니다. 쓸데없이 많이 만든 아이템이 있다면, 동물 친구들에게 선물해 더 친밀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동물의 숲에서 플레이어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습니다. 갖가지 도구를 만들어 재료 아이템을 구비하고, 가구나 의상을 만들 수 있죠. 혹은, 낚싯대와 채집망을 만들어 아직 도감에 기록하지 못한 곤충과 물고기를 낚으러 하릴없이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운이 좋다면 희귀한 물고기나 희귀한 곤충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잡은 물고기와 곤충들은 상점에 판매해 돈을 모으는 데 활용할 수도 있고, 집이나 섬에 배치하여 꾸미는 용도로 쓸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부엉이 박사님께 기증해, 나만의 박물관에 더 많은 물고기와 곤충을 늘려 갈 수도 있습니다. 이 게임에서 할 수 있는 컨텐츠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는 건 컬렉팅입니다. 희귀한 어종이나 희귀한 곤충은 쉽게 잡히질 않으며, 특정한 시간대와 지정된 계절에만 발견할 수 있는 제한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도감을 모두 채우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 섬의 박물관을 더 느낌 있게 만들기 위해 큰 노력을 들이게 됩니다.

 처음엔 고작 몇 마리만이 전시된, 텅 빈 느낌의 썰렁한 박물관이지만 플레이어의 노력에 따라 모양새를 갖춰 가는 박물관은 실제 박물관처럼 다양하고, 아름다워집니다.

 

 동물의 숲의 즐거움은 함께할 친구가 있을 때 더 극대화됩니다. 물론 이 게임에서도 대부분의 플레이는 혼자서 진행하지만, 종종 친구의 섬으로 놀러 가 그곳에서 살아가는 동물 친구들과도 만나보고, 친구와 함께 웃고 떠들며 낚시를 하고 곤충을 잡으러 다니는 재미는 소소한 행복입니다. 뿐만 아니라, 친구를 우리 섬으로 초대해 밤하늘을 감상하며 예쁘게 꾸며둔 집을 자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늦은 밤, 때때로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 사이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함께 소원을 빌 수도 있고, 열심히 모은 생물들을 전시한 박물관에 데려가,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혼자서 섬을 가꾸고, 동물 친구들과 하루하루를 보내며, 비슷하지만 다른 매일을 살아갑니다. 그것은 여느 게임에선 경험할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또한, 마이 디자인 기능을 활용해 게임에 존재하지 않는 의상을 직접 도트를 찍어 만들어 입거나, 다른 친구들에게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해금되는 의상 상점에 그 의상을 걸어두면 동물 친구들이 그 의상을 입고 돌아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죠. 혹은, 그림이나 예술 작품을 도트로 찍어 섬에 깃발로 걸어두거나 바닥에 스티커처럼 붙일 수도 있고, 집의 벽에 붙일 수도 있고, 게임 속 잡지나 칠판을 리폼해 그 디자인을 넣을 수도 있는 등 마이 디자인 기능은 폭 넓은 활용성을 갖고 있습니다.

 

 수많은 종류의 의상과 가구, 생물 컬렉팅, 섬 꾸미기, 집 꾸미기, 동물 친구들과의 교류, 일본어로 주식과 순무가 같은 발음이라는 특성을 살린 말장난을 담은 무 주식 등. 이 특별한 숲에선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번 작품에선 섬의 지형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절벽을 깎아내리고, 호수를 메우는 등 게임을 일정 수준 이상 진행할 때마다 많은 추가 컨텐츠가 해금됩니다.

 

 

 

 개발자들이 지양하는 타임 슬립을 완벽히 막아낼 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한 가지 또 영리한 방법을 고안해냈습니다. 개발한 컨텐츠 중 일부를 숨겨두는 것이죠. 그리고 그 숨겨진 컨텐츠는 특정 계절이나 특정 기간이 됐을 때, 업데이트를 통해 해금되도록 해 두었습니다. 그로 인해, 타임 슬립을 하더라도 이 게임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컨텐츠를 즐길 수는 없습니다. 이 리뷰가 작성된 2020년 4월 10일 기준으로는 부활절 기념 이벤트인 이스터 데이가 진행중이며, 이는 3월 31일 업데이트 된 데이터를 적용한 채 4월 1일 이후가 되어야만 진행되도록 설정 돼 있었죠.

 

 모여봐요 동물의 숲 제작진은 플레이어들이 이 게임의 방향성인 슬로우 라이프를 부디 즐겨줬으면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기획의도 대로 하루하루 천천히 살아가는 것은 아주 즐거운 나날들입니다. 너무 조급하지 않게, 마치 우리의 삶처럼 천천히 말입니다.

 

 동물의 숲은 비록 PS4, XB1 게임처럼 사진 같은 놀라운 그래픽은 아니지만 그 아기자기함 속의 따스함이 깃든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 따스함 속에 놀라운 디테일이 숨어 있습니다. 그저 게임 내 인테리어 꾸미기 아이템으로만 생각할 수 있는 이삿짐 박스를 배치하고 카메라를 돌려 자세히 본다면 그 디테일을 바로 체감할 수 있습니다. 흔하고 보잘것없는 아이템이지만 제작진은 열심히 디테일을 살렸습니다. 어떤 상자는 테이프 끝이 짧고, 어떤 상자는 테이프가 과하게 길며, 테이프를 힘껏 밀착하지 않아 끝이 살짝 떠 있는 디테일입니다.

 

 A 버튼을 눌렀을 때 깨알 같은 상호작용 기능을 담은 가구를 봤을 때도 그 디테일에 놀라게 됩니다. 커피 그라인더의 원두를 가는 소리, 싱크대에서 흐르는 물줄기, 기타 연주, 어항의 전등, 집 창문에 달린 커튼을 치면 미세하게 어두워지고 커튼을 걷으면 미세하게 밝아지는 세밀함. 그것은 또 하나의 삶을 구현하고자 했던 개발자들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들입니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오랜 세월 게임을 붙잡은 게이머도, 게임은 전혀 관심 없었던 사람들에게도 놀라운 경험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이 게임을 붙잡다 보면 어느새 깨닫게 됩니다. 스토리가 없더라도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고, 지친 마음이 치유될 수 있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우리 섬의 이야기가 어떤 값어치가 있는 지를 말이죠.

 

 이 게임의 스토리는 우리의 발자취입니다. 그것은 세상에 둘도 없는 유일한 이야기이며,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입니다. 한꺼번에 많은 아이템을 만들 수 없고, 실내로 들어갈 때 1~2초 가량의 잔로딩과 몇 가지 편의성 부족이 있지만 그건 중요치 않습니다. 마치 겨울철 안경에 서린 김처럼, 따듯함으로 가득한 섬에서 천천히 사라져 눈에 보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지겨운 나날들에 지쳤다면, 무언가로 치유를 받고 싶다면, 게임에 관심 없는 연인이나 가족들과 함께 즐겨보고 싶다면, 그리고 동물의 숲을 플레이해본 적 없는 게이머로서 대체 왜 사람들이 난리인지 궁금하다면. 직접 이 섬에서 며칠간 살아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 섬은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지, 잊고 있었던 따스함이란 느낌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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